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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자산 형성의 시작, 나의 잡설

멈추면진다 발행일 : 20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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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자산 형성의 실천


석사 학위 동안 3천만원을 모았다. 매달 투자 금액은 20~30만원.

중간과정의 가계부. 석사 졸업을 앞두고 직장을 구하게 되며 관리를 하지 않았다.

 

월급이 90만원인데, 투자 시드는 20만원~30만원인데 어떻게 저렇게 되었을까.

'20.02~'22.02 기간은 여러 의미로 지옥과 천국을 오고갔다.
상기 기간동안 520원짜리 육개장과 650원 남짓하는 햇반을 300개 이상씩은 먹었네. 안 먹으면 굶었다.
그거 아나? 육개장이랑 햇반 대량으로 시키면, 박스끼리 테이핑해서, 4박스가 한번에 온다.(보내는 판매처에서 택배 운송비를 아끼려고 했던 것 같다.) 책상 밑에 모셔두고, 어느 때면 햇반만 먹기도하고, 고추장이랑 먹기도 했다.
주변에서 항상 그랬다. 밥 좀 먹고 다녀라, 라면 먹지 마라, 왜 그렇게 사냐?, 옷 좀 제대로 입고 다녀라.
별로 부끄럽지 않았다. 나는 어차피 나를 무시하고 안쓰럽게보는 너네들보다 잘살꺼라는 확신이 있었다. 학부생들이 저 형은 불쌍하댄다. 별로 마음에 박히는 말도 아니었다. 

저렇게 먹고 다닌 것을 엄마 아빠는 모른다. 지금의 아내도 모른다. 알면 돈을 줬을 것이다. 집이 가난한 편은 절대 아니니까.
통근용 스쿠터를 타고 다니겠다는 말에, 아빠 찬스로 새차가 뚝딱하고 생겼다. 내 능력이 아니었기에 떳떳하지가 않아 주변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감추었었다.

대학교 입학부터인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 싫었다. 말만하면 주실 수 있는 사랑을 지닌 부모님 아래에서 컸다. 그럼에도, 그들의 나의 환경을 비교했을 때, 내가 훨씬 좋은데, 난 왜 그들을 넘을 자신이 점차 없어지는지? 에 대한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이를 해소하고자, 그나마 내 자신을 위안하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내 경제적인 부분을 내 인생의 일환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부 4학년 취업시즌 때도 금토일 21시~05시 술집 서빙을 했더랬지
편의점 야간, 전단지, 도서관 잡무, 뷔페 오픈주방, 모델하우스 보조(인간 피켓 ㅋㅋ), 음료공장, 카페, 음식집 서빙, 술집 서빙.. 알바 많이 해본 것 같다.
이외에도, 컴퓨터 조립해서 판매하고, 컴퓨터 버린 것 있으면 가용한 부품 다나와 중고에 올려서 팔고 그랬다.

바쁘고 피곤하고 힘들고 뭐 그래도, 특히나 돈을 누구한테 지원 받는 다는게 싫었다. 정확히는 부끄러웠던 것 같다. 
'나는 내 앞가림을 잘 하지 못합니다.'라고 시인하는 것 같았다.
'안 힘드니?'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저보다 힘든 사람 많아요. 다 이렇게 살껄요?'라고만 했다.


어느날, 대학 입학 즈음에, 집이 비교적 부유해졌다. 빚이 없어졌다.

아버지의 근로소득 뿐 아니라, 취득 자산의 가치 상승으로 비교적 돈의 걱정이 사라졌다.

어느날 유튜브를 봤다.

"자본 주의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아십니까? 근로 소득은 자본 소득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본 소득이 이 세상의 원동력입니다."


- 투기 -

우리집은 왜 빚이 하루 아침에 없어졌으며, 자본 주의가 뭐길래 사람들의 고귀한 노동 가치를 폄하하는가?
돈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호기심으로 그치지 않았다. 실천에 바로 옮겼다.

17년 7월경 "아빠, 비트코인이란게 있는데 지금 1개당 500만원이에요."
17년 11월, 업비트 투자시작
18년 1월 1일, 그 시즌에는.. 아침 09시 시장의 일봉이 바뀌는 때에 펌핑이 오고갔다. 해를 보고 국밥 한그릇하고 귀가길에, 그 날 수익으로 여동생 헤드셋을 바로 사줬다.
18년 1월 6일인가 시작한 하락 추세에, 근 1주만에 300%가 넘던 계좌 수익은 하루 아침에 마이너스로 변했다.
인생을 길게 보면 얼마 안되는 돈임에도 감정 소모는 산더미였다.


- 도약 -

코로나로 코스피가 1400까지 빠졌다. 아무 생각없었다. 전 세계가 돈을 풀기 전까지는.

20년 3월경, 대학원 입학 첫 달 세계적 전염병이 도래하였다. 무섭다기보다는 다른 세상의 일 같았다. 신기하기만 했다.
와중에도 뇌리에 박히는 말은, 금리를 낮춘다. 지원금을 뿌린다.

국가가 기준금리를 낮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의 부동산이 우상향을 그려온 요인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인플레이션과 레버리지.

건강한 인플레이션은 소비를 촉진한다. 내년에는 2%(지금 미 연준이 말하는 건강한 인플레이션율)의 자산 가치(물가)가 오르니, 지금 여유가 되면 사야겠구나. 내년에는 더욱 비싸져! 무서워!

내가 돈을 빌려서, 은행의 수익 창출인 예대마진을 남길 수 있다면, 왜 안하겠는가?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사서, 오르면 판다. =돈을 번다.

부동산 뿐인가?
위험자산이라 칭하는 주식과 코인에도 그 유동성이 흘러들어가겠지.

나는 이 때부터 주식과 코인을 무지성 매수하기 시작했다. 부동산은 잘 몰랐다. 그리고 사실 부동산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23년 3월 현재에도).
월에 얼마 안되는 돈 20만원 이었지만, 그 푼돈조차도 조금 더 좋은 주식에 넣어보려 용을 쓰고 그렇게 2년을 보냈다.

식비와 기타지출을 줄이면서도 자산은 매도를 하지 않았으며, 매수를 그 이상으로 유지했다. 대학원 점심시간에 쿠팡 잇츠 배달도 하고, 쿠팡 플렉스도 간간이 했다. 2학기에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외국인 귀화시험의 시험 감독으로도, 평택의 한 채굴공장에 Hive OS 기반을 세팅해주는 대가로 일당도 받아봤다. 19시정도 학교에서 평택으로 쏘고 일돕다가 새벽에 학교로 가서 잤다. 암당(AMD)계열 그래픽카드는 윈도우에서 Compute(계산)모드를 적용하여도, 레이븐 채굴의 경우 Hive에서 1.8배의 해쉬를 가졌었지. 운좋게, 우연찮게 만난 50대 형님의 짧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얻은 작은 돈과 경험, 지식은 모두 다른 자산 형성을 위해 투입되었다.


----딱 대학원 기간이 코로나로 인해 유동성이 풀리기만 하는 시점 ----- 천운이었다.

아빠가 많이 사둔 주식도 사봤다.(100만원 안되는 돈 투자해서, 결론적으로 500~700%에서 매도했고, 금액이 500만원 정도 되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철강 및 배터리소재관련 기업을 분석하고 투자하여 60~70%의 수익을 냈다.
리츠주에 관심을 가져 맥쿼리인프라도 10300원에 사서 들고있었다. 20년 연 배당이 반기별 3.6% 이었나. 배당 받고 지루해서(정확히는 다른 것들 오르는 것에 FOMO가 와서..) 1.3만원 정도에 팔았다.
그냥 사서 들고있어라라는 - 삼성도 샀다. 5만원 언더에서 사서 8만원 위에서 팔았다. 그러다가 10만전자가나? 라는 포모가 오고, 8만원 초반대에 다시 주웠지만 지금은 -20%/ 재매수한 금액이 적어서 다행이다.
이상한거 많이 사봤다. 근데 이득 봤다. 기타 등등 잡다한 단타도 먹히는 장이었다. 그냥 상승장이었으니까.
이렇게 주식으로 근 1천만원 이득을 봤다.

 

채굴기도 운영했다. 이더리움, 이클, 레이븐을 채굴했다. (대표사진 21년 3월 9일에 -240만원이 찍혀있는 것은, 부랄 친구중 한놈과 2월 중순, 1660super 8way 채굴기를 도입했을 때이다. 도합 500만원 정도 들였다.)
3개월간 400만원정도 채굴하고, 21년 5월1일 되자마자 1660super 7way를 460만원에 팔았다.
그렇게 친구랑 채굴기(나름의 사업)을 정리하고, 새로 사들인 1060 6gb 2대, rx470 4gb모델 짜투리는 거의 매일 whattomine을 참고하여 이더리움 클래식과 레이븐을 번갈아 캤다.(23년 3월 아직도 안팔음. 이클 현재 -50퍼 이상...?ㅋㅋ, 레이븐 -70퍼? ㅋㅋ)
이렇게 채굴로만 근 1천만원 수익을 본 것 같다 .아직 실현안한게 200만원 정도되는 것 같고..

코인을 자산이라 할 수 있을까?는 모르겠다. 그저 원화로 환산된 숫자만 늘어나면 될 뿐이었다. 나는 코인을 믿었다. 지금도 일부 믿는다. 실물이 없는 것을 자산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술 발전에 기반한 인간의 사회성은, 실물이 없어도 자산이라는 가치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결국 코인은 채굴로인한 수익을 제외하고, 내 돈을 들여 매수한 코인들에 대해서는 거의 제로썸이다. 

그 외에는 소비를 줄이고 줄여 모은 적금과, 여윳돈이 생기면 청약통장에 넣으며, 신용카드 이벤트(발급후 첫달 12만원 사용시 12만원 캐시백)등을 최대한 활용하는 등 돈 모으기에 급급했다.

돈을 모았다기 보다, 지금 형성하는 자산은 향후 나의 시간을 기하급수적으로 절약해줄 것이라 믿었다.
(22년 하반기 결혼자금으로 다 들어갔다 ㅋ)


그렇게 최근 4년 정도를 산 것 같다. 석사학위를 받고 국가과제 기획기업에 취업, 이로부터 이직하여, 연구소로 왔을 때에도. 나의 소비습관은 변하지 않았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2년 12월, 삼성카드를 재발급(직전 결제이력 6개월 이상 없으면 다시 발급이 가능하고 이벤트 참여도 가능)하여 13.5만원을 받고있다. 3만 6천원짜리 구두를 6개월 신는다. 앞굽이 떨어져 본드로 붙여 신다가, 뒷굽이 찢어져서 새로 샀다. 똑같은 신발 신고있는데, 같은 뒷굽이 찢어지고 있다. 

옷이 없다. 그저 4만원 짜리 맞춤 셔츠 5개로 멋들어지게 다닐 뿐이다. 누구도 나의 행색이 초라하다 하지 않는다.(적어도 나의 생각은) 키와 몸이 은근 커서 뭘입어도 괜찮다.(???????)
신발이 없다. 필요없다. 어차피 7일중 5일은 회사를 간다. 구두만 찢어지면 제때 갈아주면 된다.

음식도 혼자있으면 찾지 않는다. 비싼 음식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저 좋아하는 음식은 라면, 햄버거, 치킨, 짜장면 등.. 소고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밖에서 잘 안 사먹는다.

술/담배도 안한다. 술은 재능충이라기엔 그렇지만, 안먹는사람치고 잘먹는다. 담배는 애초에 싫다.

22년 8월부터 월급의 80퍼센트는 현금성 저축/주식/채권에 들어가고 있다. 묻지마식으로 고정지출/연금저축/ 청년저축 제외하고 아내 통장에 다 박는다. (아내와의 1차 목표는 상호금융기관 비과세 3천만원 예금 -농특세는 떼지만. 23년 상반기 내로 달성!  - 사실 대출 갚느라.. 대출 갚은 돈 생각하면 23년 1월에 벌써 달성하고도 남았다.)

현급여가 높지는 않다. 대신, 워낙 나에게 들어가는 고정지출이 적어서 가능하다.
나는 고정지출을 늘리기가 싫다. 나의 자본소득(불로)이 고정지출을 모두 감내할 때, 비로소 나의 시간적 자유를 얻기 때문이지. 투자를 하시는 모든 어르신들 똑같은 바램일 거다. 
난 다른 사람들 보다 앞서나가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렇게 70살에 200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배당주와 채권 위주의 투자를 실천하고 있다.

사람들 뭐 비중 짜가지고 데이터 분석해서 하는 투자를 퀀트 투자니 어쩌니 하던데.... 나도 그사람들과 같아지고 있다. 그게 부자를 따라하고, 따라가는 방법이라고 생각이 든다. 종목은.. 내 알아서 짜 나가야지

어떻게 나의 부를 이루어 가는지, 어떤 선택들을 하는지 기록해보고 나아가보자.

미래의 나에게, 잊혀지지 않을 과거를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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